-혹시 로봇 3원칙에 대해서 아세요? 로봇 3원칙이요? 그녀가 되물었다. (중략) 아이작 아시모프가 밝힌 거지요. 제 1 조, 인간을 해쳐서는 안된다. 제 2 조,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. 단 1조에 어긋나는 경우는 제외한다. 제 3 조, 위 두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를 지켜야한다. 이것을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3원칙이라고 부릅니다.
(중략)
그런데이 3원칙이 딜레마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. 아시모프도 그런 상황을 설정했지요. 사람의 마음을 읽는 로봇이 있다고 칩시다. 그 로봇에게 한 남자가 다가가 동료 여승무원이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어봅니다. 로봇은 그 여자가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. 그렇지만 로봇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.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그가 자살해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. 로봇은 그 남자의 마음도 읽고 있죠. 만약 그가 자신의 말 때문에 죽어버린다면 그것은 '인간을 해쳐서는 안된다.'는 제 1조에 위배되는 것이죠. 그래서 로봇은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. 그러나 이 남자는 어서 대답을 하라고 로봇을 다그칩니다.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제 2 조를 생각하면 명령을 따라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제 1 조 를 위반하게 됩니다. 화가 난 이 남자가 로봇에게 빨리 말을 안하면 폭파시키겠노라고 협박합니다. 제 3 조를 기억하십니까? 1조와 2조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. 그러나 이 로봇은 자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. 왜냐하면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이야기하면 1조를 어기게 되고, 그녀가 그를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하면 진실을 말하라는 인간의 명령을 어긴 셈이 되니 2조 위반입니다. 그러니 이 로봇은 스스로 자폭하는 것밖에는 수가 없습니다.
-<로봇>中에서
열두 살의 나, 잔잔한 어느 호텔 수영장에 떠 있던 내 육체가 기억납니다. 검게 코팅된 물안경으로 창백한 태양과 위태로운 다이빙대가 보였습니다. 나는 한껏 숨을 들이마셔 허파를 부풀렸습니다. 가슴께가 수면 위로 떠올라 내가 더이상 가라앉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. 두 귀는 물속에 잠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.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내게 말했습니다. "너는 해파리야." 나는 그 때까지 해파리를, 투명한 몸을 흐느적거리며 물 위를 떠다니는 그 이상한 바닷생물을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. 그런데도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한 마리 해파리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했습니다. 어쩌면 인간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? 새의 울음소리를 완벽하게 흉내내는 폴리네시아의 원주민처럼, 자칼의 가면을 쓰고 행진하는 아마존의 어느 샤먼처럼, 인간은 어떤 순간 완벽하게 다른 존재 일 수 있는 게 아닐까요? 정말 인간은 삶의 전 순간을 오직 인간으로만 사는 것일까요?
-<밀회>中에서
-현주가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다가 죽은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.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그때까지도 대학원에 남아있던 희정이 언니였다. 처음에는 그것마저도 현주 특유의 뻥으로 치부하려 했지만 이내 자기가 죽었다는 얘기까지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. 듣자하니 장례식장은 현주답지 않은 너무도 초라하고 작은 병원의 영안실이었고 (두바이에서 석유 판다는 아버지는 어디 가고?) 발인은 그 다음날이라고 했다. 나는 가지 않았다. 그때는 그냥 몸이 안좋아서라고 스스로 변명했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. 나는 현주가 정말 죽었을까봐 가지 않았던 것이다. 현주는 거짓말쟁이이고 불여우이고 내숭쟁이인데, 그건 정말 확실한데, 그런 계집애가 관 속에 누워서 나를 비웃고 있을 생각을 하니 도저히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. 그리고 거기서 분명 마코토가 슬픈 얼굴을 하고 현주의 영정 앞을 지키고 있을 게 아닌가? 나는 기절하는 현주를 부축할 때와 비슷한 열패감에 사로잡혔다. 왜 현주는 나보다 뭐든지 폼나는 거야? 죽어도 왜 뇌종양같은 깔끔하고 근사한 병으로 죽는 거야? 에이즈나 장티푸스 같은 것도 있잖아? 언제나 그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야 되겠어?
-<마코토>中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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