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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그렇게 금방 망하지 않아
책도 읽습니다

행복한 그림자의 춤 (앨리스 먼로)

by 최옌데 2019. 11. 12.

#호수는 세월따라 새록새록 달라졌다. 저 너른 벌판과 그 위를 누비고 다니는 공룡을 눈 앞에 떠올리려 아무리 애써도, 터퍼타운 시가 들어서기 전 인디언들이 살았던 때의 호숫가조차 나는 떠올리지 못한다. 아버지는 차분하게 받아들이는것처럼 보이건만,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이토록 짧구나 싶어서 나는 선뜩 놀란다.

#내게는 때때로 아버지가 이 세상이 생겨나면서부터 내내 살아온 사람처럼 보인다. 하지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그 모든 시간에 견주어 보면 아버지도 사실 이 땅에서 나보다 아주 쪼금 더 오래 살았을 뿐이다. 그러니까 적어도 자동차나 전깃불이 없던 시절로 말하자면 아버지라고 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것도 없을 거였다. 금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아버지도 이 세상에 없었던 거였다. 이 세기가 끝날 즈음이면 나는 늙고 늙어, 가까스로 살아있을테지. 그 생각은 하기 싫다.

#그리하여 아버지는 운전을 하고 남동생은 토끼가 지나가나 길을 살피고 나는 우리가 차에 타고 있던 아까 그 오후의 마지막 순간부터 거꾸로 흐르면서, 어리둥절하고 낯설게 변한, 아버지의 삶을 더듬는다. 마치 마술을 부리는 풍경처럼,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친근하고 평범하고 익숙하다가도 돌아서면 어느새 날씨는 변화무쌍하고 거리는 가늠하기 어려운, 끝끝내 알 길 없이 바뀌어버리는 풍경 같은 그 삶을.


<행복한 그림자의 춤> /앨리스 먼로 '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 中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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