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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그렇게 금방 망하지 않아
이건 그냥 쓰는거야

이럴땐 널 생각해. 로제타

by 최옌데 2019. 11. 12.

 

세상엔 참 어차피 태어난 거 잘살아보겠다고
노력하는 사람도 많은데, 아주 훌륭한 사람들도 많은데,
그렇게 살지 못하겠으면 자신에겐 이기적이어도
남에겐 이타적이었으면 좋겠건만,
거미줄을 치면 자기만 거미줄에 엉키는게 아니다.

나는 비록 아주 착하지도 않고 나날이 못되지는 거 같고,
아주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니고 남을 위해 별로 희생하진
않지만 가능하면 내 인생 정도는 책임지고
그냥 더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선에서
조용히 그림자처럼, 어느날 이상할 것도 없이 스르륵 사라지는
그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.


그런데 자꾸 거미줄에 걸리고 시궁창에 빨려들어가고
강가에서 손이 쑥 올라와 발목을 잡아끈다.
그렇다고 혼자 죽으라고 할 용기는 없고
그냥 다들 나처럼 해결책이 없을 땐 우선 참고 살면 좋을텐데.
그게 안되는 이유가 뭘까.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마음대로
위로할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다. 이게 바로 문제.

내가 힘들 때마다 다르덴 형제 영화 로제타가 생각나는 건
로제타가 가끔은 나같아서 그렇다.
걔가 무슨 죄가 있어, 그냥 대단히 세상에 이롭게 살지는 못해도
일을 주면 열심히 하고 굶어죽지 않으려고 애쓰고
나쁜 마음도 가끔 먹지만 꾹 참는다.
그러다 결국 자살하려고 하지만 그게 안되자
다시 그냥 살기로 한다.
죽고싶을 때 죽을 수 있었으면 백번도 죽었겠지만.
누굴 죽이고 싶을 때 죽였어도 백명은 죽였을테지만.
로제타가 늘 말한다. 나는 정상이야, 나는 잘 살고 있어.
나는 힘들다고 해서 스스로 망가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
로제타의 마음을 이해한다. 로제타는 그래서 죽었을까 살았을까.

고통은 나눌 수 없는 것.
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건 그걸 나눠가지는 게 아니라
그 사람이 잘 이겨내기만을 진짜로 바라는 것 뿐이다.

가끔은 정말로 신이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
시련만 주는구나 라고 고맙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
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을 때가 있어서
얼마나 많은 것에서 벗어나야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지.

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정말 독실한 신자이지만 정말
인생이 안 풀리는 분이 있는데, 그 사람을 지탱해주는 건
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만 가진것 같다.
그렇게라도 뭔가를 붙드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.

젊어서 결혼해 세 아이를 잃고 남편도 먼저 보내고
손주까지도 먼저 보낸 우리 할머니는 20년 가까이 병으로
아파하며 살아오면서도 이 좋은 세상, 죽기 아깝다고 했었는데
모든 걸 다 지내보낸 후, 긴 긴 마지막이 되면 나도 그럴지
모르겠지만, 모든 게 다 지나가기 전에 죽게 되면
후련해 미칠 지도 모른다. 난 아빠도 조금은 그런 기분이
아니었을까 생각한다. 살고 싶은 만큼 죽고 싶기도 한 기분을
아마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한다. 내가 멋대로 이렇게 생각해
버리면 안되겠지만. 예전에 더이상 가망이 없어 안락사를
결심한 미국인 할아버지가 티비에 나와 "어쩔 수 없지.
좋은 인생이었소" 하고 떠났는데 그게 참 인상적이었다.
어쩔 수 없지. 지금은 너무 많은 미련이 있고 풀지못한
미움도 너무 많고 마음이 괴로울 때도 아주 많지만
가기전엔 눈녹듯이 다 사라져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면
좋겠다. 나는 내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만용인가.

내일 되면 또 괜찮아지겠지.
이걸 한 수십년 반복하다보면 노약자석을 탐하는
추접스런 늙은이가 되어 있을지
아니면 말년에 복을 받아 방 한칸에 들어앉아
생계걱정은 안해도 될 만큼 살면서 좋아하는 티비나
실컷 보며 살 수 있을지. 그전에 뭔 일이 일어나
하늘나라에 가 있을지. 투모로우 네버 노우. 정말 무서운 말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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